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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2007년 12월 31일 인권국가로의 도약 여부를 결정짓는 심판대에 선다. 그 잣대는 사형이다. 이날까지 사형을 집행하지 않을 경우, 국제 앰네스티는 한국을 사실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하게 된다. 19세기까지 사형이 일반적으로 행해지던 한국에서, 10년 연속으로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 커다란 성과다. 그러나 26명을 죽인 기록적인 연쇄살인사건으로 인해 사형제 존치 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인터넷에서 벌어진 설문 조사에서는 ‘사형제 존치 찬성’ 측이 무려 70% 가까이 차지하기도 했단다. 물론 범죄자는 죄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형벌의 목적은 응보가 아니라 장래 범죄의 예방과 일반인에 대한 경고이기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의 응보에 방점을 찍는 사형은 형벌의 당위성을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더구나 대한민국 헌법 34조는 모든 국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니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졌다고 규정한다. 그것은 범죄자도 마찬가지다. 생명권이라는 최후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사형이야말로, 응보에 방점을 찍는 '사법 살인'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더구나 ‘죄값을 치른다’는 점에서도 국민들이 기대하는 만큼의 효과가 없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형은 범죄자의 노동력을 상실하게 만들어 피해자나 유족에게의 보상을 불가능하게 할 뿐더러, 사회 전체의 미래 효익을 감소시킨다. 오히려 출소가 불가능한 종신 노역형이야말로 범죄 예방과 피해보상, 경고라는 형벌의 목적에 부합하는 셈이다. 그러한 점에서 국가인권위원회도 사형제 폐지를 권고하며 가석방 없는 종신형의 대체 방안을 내놓은 바 있다. 사형 존치론의 가장 큰 근거인 위하력에 대한 효과 역시 부정적이다. 사형의 범죄 예방 효과가 증명되려면 집행에 따라 범죄건수도 줄어들어야 하건만, 사형이 존치된 반세기 동안 흉악 범죄의 발생추이는 그대로였다. 통념과 달리 범죄행위를 막는 위하력에 있어 최고가 아니라는 얘기다. 유엔이 88년과 96년 두 차례에 걸쳐 “사형이 종신형보다 범죄행위의 예방에 효과적이라는 증명에 실패했다”는 요지의 보고서는 그러한 통념이 사실이 아님을 방증한다. 입법사상 세 번째로 제출된 사형제 폐지 특별법안이 법사위에 계류된 채 자동 폐기될 위기에 처했다. 국회의 임기 만료가 다가온데다, 국민 과반수가 사형제 존치에 찬성하기에 정치적인 실익이 없어서다. 사형제 폐지 직후 “정부와 국회는 국민을 대표해 도덕적으로 옳은 일을 하라고 선출된 것”이라던 프랑스 정부의 발언을 상기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분명한 것은 ‘국민의 법 감정’이 결코 사형제 존치의 면죄부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공은 넘어갔다. 심판대에 선 한국이 인권국가로 도약하느냐의 여부는 입법부의 결단에 달려 있다. 2. 사형제만큼은 보수적이었던 여론의 동향이 '우행시' 이후 약간은 바뀌었다. 대중문화가 아젠다를 제기했다는 것은 분명 긍정적이나, 사형제도에 대한 여론이 얼마나 취약한 기반에서 구현되어 있는 것인지의 반증이다. 병약한 눈망울의 사형수 앞에서 대중은 갈대처럼 흔들렸다. 우행시의 강동원은 안 되고, 유형철같은 악마는 사형인가. 이미지에 우왕좌왕하는 여론, 그것을 빌미로 다시 발뺌하는 제도의 모습이 눈앞에서 펼쳐진다. 그때는 참으로 스펙터클했다. '소박한 국민의 법 감정'. 헌재가 95년 사형제에 대한 헌법소원에서 합헌 결정을 내린 이유였다. 거기에는 '시대상황이 바뀌어 사형에 의한 범죄예방의 필요성이 없어진 뒤에도 사형이 형벌로 남아있다면 그때는 위헌'이라는 판단이 슬쩍 추가돼 있다. 각하하고, 연기하고, 미루다 못해 국민이라는 방패에 기대 내린 비겁한 결정이었다. 그들이 논거로 드는 '국민의 법 감정'이 지극히 추상적이고 검증되지 않은 지식에 의해 형성된 감성이라도 상관없었던 게다. 무책임했다. 온당치 못하다. 사람들이 가진 형제에 대한 이미지는 대략 이러하다. 「사형제는 범죄자들에게 심리적 압박감을 가해 범죄를 예방하는 상징적 효과를 지니며, 흉악범죄를 상대로 법적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 또한 타인의 생명을 해친 사람들까지 생명권을 보호할 필요는 없으며, 오히려 개인적인 보복범죄를 막아줄 수 있는 방패다.」 사형제를 옹호하는 이들은 이러한 막연한 효과를 기대한다.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영국의 공개처형장소에서 동료 소매치기들이 교수형에 처해지는 동안, 나머지 소매치기들은 구경꾼들의 지갑을 터는 데 바빴다는 사실. 그리고 사형은 죽음을 느낄 새도 없이 숨지는, 실제로는 아주 편안한 죽음이라는 것. 문필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사형의 이미지는 아직도 대중들 사이를 망령처럼 떠돌고 있다. 사형의 위하력과 응보, 그것은 완전한 허구다. PS> 국제앰네스티의 사형제 폐지국가 지정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는 사형을 집행할지도 모르는 차기 정권의 정치적 부담을 고려해서다. 인권국가를 알려주는 가장 좋은 타이틀을 누구도 버리고 싶어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3. 첨언. 8명의 원혼을 달래기엔 너무 늦었다만, 오늘 인혁당 사건에 결국 무죄가 선고됐다. 결국 화두는 사형제의 맹점이었다. 본문에서는 일부러 오심과 정치적 악용에 대한 이야기를 제외했다. 사형제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지, 그 오용에 돌을 던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용을 줄인다고 해서 사형제가 정당화될 수 있을까? 대답은 부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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앓는중 직장인 몽상가 최근 등록된 덧글
와우 확팩..연말엔 스타2 ..
by 산왕 at 07/23 하지만 중요한건 저거 등장.. by 컴터다운 at 07/23 김형태씨의 육감적인 일러.. by 케인 at 07/23 한동안 조용한가 했더니.... by Shirou君 at 07/23 딱 보고 창세기전! 했는데 .. by ALbaTro at 07/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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