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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의 사랑방 윗편은 언제나 별세계였다. 대전에서 아버지의 낡은 구루마로 할머니댁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달려가던 곳이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면 공기가 달랐다. 50년 정도 묵어 보이는 육중한 바둑판은 물론이요, 호랑이가 금방이라도 뻑뻑 피워 댈 듯한 곰방대와 꼬불꼬불하게 그려진 서화첩들이 나를 반겼다. 무엇이든 가지고 놀아도 되던 그곳이었다만, 할배가 딱 한 번 크게 화를 내신 적이 있었다. 잘못해서 밟아버린 대나무 죽간통이 문제였다. 내가 허리에 아주 금을 내어버린 그놈의 죽간통은, 알고보니 참으로 신묘한 물건이었다. 마을 뒷편 우럭산의 대나무로 곱게 만들었다는 고놈을 들고, 할배는 가끔 방에서 육효를 뽑아들곤 했다. "농투성이가 운좋게 고등학교 교장이 됐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그네는 의외로 그렇게 점을 믿었던 게다. 언제나 돌부처같던 할배의 얼굴에 드물게 미소를 떠오르게 하던 '신묘한' 죽간통은, 당신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우리 논마지기의 반을 말아먹었다. 아버지는 또 정반대셨다. 당신께서는 할배가 돌아가신 후 죽간통을 끔찍이도 싫어하시던 것처럼 보였다. "저놈의 죽간통 때문에 집안꼴이 결딴이 났다"며 꼴도 보기 싫다던 당신, 가끔씩 술을 드실 때마다 반합 위에 죽간통을 올려놓곤 했다는 것을 나는 안다. 자는 척하며 뒤척거리던 내 눈에 박힌, 그놈의 죽간통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가끔씩 만지작거리던 당신의 모습. 그렇지만 아배는 지금껏 죽간통을 결국 흔든 적이 없었다. 그리고 내버리지도 않았다. 옛부터 조상들이 대나무 통에서 육효를 뽑는 것은 재미요, 사소한 소일거리에 불과했다. 생각해 보면 화를 피하거나 복을 부르기 위해 기원했던 존재는 육효 말고도 참 많지 않았던가. 황대마을 서낭당의 커다란 고목나무가 그랬고, 옆을 지나갈 때마다 합장을 했던 우럭산의 돌무덤이 그러했다. 허나 할배처럼 불확실한 점괘에 매달려 이놈의 나무쪼가리에 허황된 베팅을 하는 것도 문제지만, 아배처럼 아예 무시하는 것도 본래 의미에 맞지 아니했을 터다. 결국 그놈의 죽간통이 의도하는 것은 세상 만사가 자신의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 아니겠는가. 어쨌거나 그놈의 죽간통은 지금 내 옆의 창틀에 조용히 서 있다. 몇 달 전 집을 나설 때 광을 뒤져 몰래 가지고 나왔던 게다. 외갓댁의 다락방 창틀에 올려놓고는 물끄러미 바라보니, 이 물건이 참으로 멋드러지게 낡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정교하게 사람이 춤추는 모습의 그림도 그렇거니와 오래되었음에도 표면에 자르르 윤기가 흐르는 것이 간데없는 장인의 손길이다. 문득 할배 흉내를 내서, 달그락거리다 육효를 뽑았다. 쏟아진 작은 나무판들을 내려다 보면서 그제서야 다시 깨달았다. 나는 점을 볼 줄 모른다는 사실을. 이제 잘 때가 된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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앓는중 직장인 몽상가 최근 등록된 덧글
와우 확팩..연말엔 스타2 ..
by 산왕 at 07/23 하지만 중요한건 저거 등장.. by 컴터다운 at 07/23 김형태씨의 육감적인 일러.. by 케인 at 07/23 한동안 조용한가 했더니.... by Shirou君 at 07/23 딱 보고 창세기전! 했는데 .. by ALbaTro at 07/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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