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자는 무지하다.
by 달빛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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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영화를 만났을 때]
타짜의 손은 눈보다 빠르다. 밑장을 잡아던진 순간, 아귀의 갈퀴같은 손가락이 번개처럼 고니의 손목을 잡아챘다. “이게 뭐시여. 이게. 장난질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지라?” “어디서 생트집이야!” “어허, 네가 밑장 잡아빼는거 다 봤으. 정마담한테 돌린 패 사쿠라지, 그렇챠?”

고니는 하얗게 웃었다. “이 패가 사쿠라가 아니면.” “뭣이여?” “내기할래?”
죽여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평경장의 말이 고니의 귀에 어른거렸다. 악문 어금니가 부스러지는 것이 느껴졌다. 다음 순간 고니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차라리 짐승같은 으르렁거림이었다. “사쿠라가 아니라는 데 내가 가진 돈 모두와, 오른손을 걸겠다. 니는 어쩔래.”
아귀가 움찔했다.
from「타짜, ‘지리산 작두’」

몇 십억 원이 화투장 한 장에 오간다. 선량하게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로서는 상상도 못할 이야기다. 되도 않는 이야기, 허무맹랑하고 발칙한 상상력. 그것을 비하해 ‘만화 같은 이야기’라고 표현하던 시절이 있었다. 분명 얼마 전까지도 그러했다.

왜 만화에 구애(求愛)하는가

세상이 바뀌었다. 시간을 조정하는 히어로들(「타이밍」), 탈을 쓰고 일본군을 쓰러뜨리는 ‘한국판 조로’(「각시탈」), 한 판당 몇 억씩 오가는 배팅에도 눈 깜짝 않는 담 큰 사내들(「타짜」). 어느새 ‘만화 같은 이야기’가 먹히는 세상이 됐다. 만화에 익숙한 7,80년대의 신세대가 문화소비의 주도계층으로 부각되면서, 상상력은 점차 그 지평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허무맹랑한 판타지도, 있을 법하지 않은 초능력도. 무엇이든 ‘팔리기’ 시작했다. 서슬 퍼렇던 80년대가 지나고 사회 구성원 누구나 만화를 당당히 볼 수 있는 분위기가 됐다. 만화는 현실이 되어갔다. 그렇게 만화만의 ‘돌발적인’ 서사구조에 대한 거부감이 점차 희미해지면서 사회에 녹아든 만화는 다른 분야를 넘보기 시작했다. 영화였다.

이미지와 단선적인 감각에 익숙해진 영상물 세대들에게 ‘만화 같은 이야기’는 강력하게 자신을 어필했다. 무한한 상상력의 위력을 일찌감치 알아챈 영화 제작자들에게도, 한 줄로 요약되는 단순하고 흥미를 끄는 만화의 이야기는 참으로 매력적으로 다가왔을 법하다. 인쇄매체의 소비자 -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이미 ‘검증된’ 연재만화라는 진수성찬. 만성화된 소재 기근에 시달리는 영화제작자들이 군침을 흘리게 된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시나리오를 새로 구하는 것보다 이미 공인된, 양질의 만화원작의 판권을 사들이는 편이 더욱 수월하기에 그러했을 테다.

더구나 어려웠던 만화계의 내부사정 역시 한 축을 담당했다. 80년대의 작가 이두호와 고우영, 이현세와 허영만이 ‘마이다스의 손’이라 불리던 시절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얘기였다. 일명 대본소 시스템의 붕괴와 대여점 체제의 고착화, 인터넷에서 떠도는 ‘스캔본’의 여파로 만화업계의 시장은 고사 직전의 위기에 처한 지 오래였다. 그러나 만화는 ‘악의 축’이라는 80년대의 편견은 아직도 망령처럼 떠돌아다녔다. 누구도 선뜻 구매를 위해 지갑을 열지 않았다. ‘주류 문화’로의 편입에는 넘어설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벽이 굳건히 존재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만화 혼자서 ‘꽃’이 될 수는 없었다. 만화가들은 단순한 잡지연재에 머물러서는 생계를 위협받는 현실에 직면했다. 대여점에서 빌려보되, 구매하지 않는 그들의 ‘팬’에게만 의존하기에는 생존이 너무도 절박했다. 만화는 ‘이름을 불러줄’ 이가 필요했다. 살아남기 위해. 만화가들이 좁아질 대로 좁아진 오프라인의 종이매체 출간 대신 영상의 구애에 슬며시 눈길을 던진 것은 그래서였다. 이해가 맞아떨어졌다. 충무로로 대변되는 영상제작자들은 걸출한 시나리오의 부재상황을 타파했고, 만화가들은 주린 배를 얼마간이나마 채울 수 있었다. 분명, 그것은 로맨스였다.

화면이 만화의 이름을 불렀을 때

정우성과 고소영 주연의 영화 「비트」. 김성수 감독이 제작한 허영만의 만화 원작은 톡 터지듯 화면에서 만개(滿開)했다. 은막이 만화의 이름을 불렀을 때, 만화는 비로소 ‘꽃이 됐다.’ 가능성이 발견됐다. 성큼 발전해온 제작기술도 ‘만화 같은 이야기’가 영상으로 치환되는 환경의 조성에 한몫했다. 바야흐로 골드 러시였다. 금광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들은 모노톤의 서부극 장면처럼, 너도나도 만화계에 추파를 던졌다. 동네 만화대본소의 문턱은 ‘요즘 잘 나가는 작품이 무엇’인지 묻는 사람들로 인해 닳아 밋밋해질 정도였다.

90년대 중반 이래로,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상제작 붐은 쉽사리 꺼지지 않았다. 만화의 상상력을 자유롭게 완성시킬 수 있는 기술력은 이미 갖춰진 상태였기에 더욱 그러했다. 강도하와 강풀의 인터넷 만화로 줄기차게 이어져온 불씨는 2006년 10월, 「타짜」에서 화려하게 폭발한다. 박스오피스 집계 630만, 한국 역대 흥행순위 「웰컴 투 동막골」에 이은 7위, 18세 이상 성인영화 가운데 「실미도」의 뒤를 이어 바로 두 번째. 영화와 만화가 함께 낳은 ‘사생아’치고는, 꽤나 기념비적인 성과인 셈이다. 물론 메주가 실하다고 꼭 맛있는 장국이 나오라는 법은 없다. 「타짜」의 화려한 성공의 그림자 이면에는 「비천무」와 「아파트」, 「다세포소녀」라는 불운한 이름들이 숨어있기에 그러하다.

하나의 매체를 ‘옮긴다’는 의미는 단순한 카피가 아니다. 종이매체인 만화에 ‘맞춤’으로 존재하던 이미지의 새로운 재창조다. 이야기 구조의 차이, 시각적 표현의 문제와 같은 난점들에 눈을 감은 채, 매력적인 캐릭터만을 화면에 옮겨 담으려는 무심한 ‘전환’이야말로 실패의 지름길이었던 셈이다. 무작시리 명작이던 만화 원작을 담아내면 좋은 영상이 나올 것이라는 주장은 이제 여러 번의 실험으로 검증됐다. 오산이었다.

그나마 확실해진 것은 있다. 지금 만화와 영화는 ‘열애 중’이며, 가까운 시일 내에 그들의 로맨스가 종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화면이 만화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만화의 무한한 상상력은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좀 더 가까운 현실에서 살아숨쉬며 확대 재생산된다. 만화가들에게도, 영화 제작자들에게도 그것은 너무도 매혹적인 포인트다. 양자가 쉽게 발을 빼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윈-윈 게임이란 단순하다. 서로가 양 바퀴가 되어 앞으로 굴러가는 지금의 관계다.

앞으로도 로맨스는 더 활발해질 것이다. 만화는 영화의 콘텐츠 원천으로서 분명 새로운 위상을 정립하게 될 것이며, 영화는 치열해지는 만화의 오프라인 경쟁을 벗어나는 날개 역할을 맡을 것이다. 이왕이면 열애 끝에 「타짜」를 넘어서는 튼실한 ‘우량아’를 낳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만화 원작의 작품이 대종상을, 나아가 물 건너 모 영화제의 ‘황금종려상’과 ‘금곰상’을 차지할 날이 오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꿈이 머지 않았다는 희망을 내심 품어본다.

만화를 향한 영화의 구애는 이미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기록적인 페이지뷰를 기록하며 만화의 대중성을 확인시킨 강도하의 「위대한 캣츠비」, 강풀의 「순정만화」, 「타이밍」, 「바보」, 「26년」등의 온라인 작품들은 모두 판권이 팔려나간 상태다. 이가영화사에서 윤인완의 「아일랜드」를, 나비픽쳐스는 허영만의 「각시탈」을, 「괴물」의 봉준호 감독은 프랑스 만화인 「설국 열차」를 원작으로 한 영화를 제작할 예정이다. 형민우의 「프리스트」 역시 「아미티빌 호러」의 앤드류 더글러스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되어 내년에 개봉된다. 허영만 씨의 「식객」 역시 「타짜」의 인기를 이어받을지 주목되고 있다. 만화란 아무리 퍼내도 끝없는 우물과도 같았다. 화면에겐 분명 축복이다.

부천만화센터 포트폴리오, 맛뵈기용으로 잠깐 올렸다 폭파합니다.
by 달빛이야기 | 2006/11/29 15:20 | CCL PRESS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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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은령 at 2006/11/29 23:23
순간 어라 잘못들어왔나...하고 생각을...
Commented by twina at 2006/11/30 23:33
읽기 힘들다고
Commented by 팥· at 2006/12/01 13:14
스킨 배색이 정신병원을 떠올리게 하는구려...
Commented by 달빛이야기 at 2006/12/01 16:40
이번달은 이렇게 갑니다:) 팥님은 좀 말을 곱게 쓰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Commented by 라휘-르 at 2006/12/02 18:43
마작은 돈걸면 패가망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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