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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니체는 <반시대적 고찰>에서 ‘역사 이용의 방식’을 기념비적 역사, 골동품적 역사, 비판적 역사로 나눴다. ‘기념비적 역사’란 일찍이 현존했던 위대한 역사를 상기시켜, 과거 '영화'의 재현에 나설 수 있는 '용기'를 심어주는 역사다. 물론 과거와 현재의 상황은 엄연히 다르기에, '기념비'가 다시 세워질 수 없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그럼에도 과거를 소구하는 ‘기념비적 역사’가 횡행하는 현실을 본다면, 그는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동북공정에 대응하는 한국의 방식이 꼭 그러하다. 한반도 통일 이후 국경분쟁의 대비와, 소수민족 통합이라는 목적을 감춘 ‘역사 연구’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언제나 고루했다. 고구려와 발해는 당연히 우리 땅이며, 역사를 왜곡 말라는 우리식 민족주의. 그처럼 한국의 '국사'를 정사로 놓고, 중국이나 일본의 '역사'가 틀렸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얻어낼 수 없었다. 새역모를 지지하는 산케이(産經)신문이 한국의 국정교과서를 본받자는 사설을 게재했을 때, 우리의 민족주의적 대응방식은 시효만료를 고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동북공정의 반론으로 한국이 제시한 ‘진실’이 아무리 객관성으로 포장되어도, 그것은 우리의 민족주의적 역사해석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한국민의 원류로 보는 예맥이 중국에서는 한족과의 혼혈로 만들어진 분파로 간주되듯, ‘이에는 이’로 똑같이 맞서는 데는 한국의 국력과 시간에도 한계가 있다. 기념비적 역사관에 대한 건전한 비판이 '그들의 민족주의' 앞에서 '우리 민족주의'의 논리를 약화시킨다는, 조야한 논리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제 ‘만주는 우리 땅’ 식의 대응에서 벗어나, 이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역사방법론을 정립할 때가 됐다. 앙숙이었던 독일과 프랑스, 폴란드가 공동 역사교과서를 편찬했듯 한중일 삼국이 역사 탐구를 공동으로 추진하는 ‘중립적 역사단체’를 설립하는 방법이야말로, 되풀이되는 소모적 논쟁을 종식시킬 대안이 될 수 있다. 진실에 가까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현실을 잠식하는 역사’의 본모습을 찾는 것이야말로, 날선 민족주의로 인한 긴장을 완화시키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광활한 만주벌판을 호령하며 말을 달리던 선조들의 모습에, ‘향수’를 느끼는 것은 여기까지만 하자. 동북공정으로 인해 갈등과 관심이 촉발된 지금이야말로, 힘을 합쳐 민족주의의 베일에 가린 '진짜 역사'를 찾아낼 호기다. 역사를 바라보는 눈가의 힘을 조금만 푼다면, 세 나라의 협력과 항구적인 동북아의 평화정착은 성큼 다가올 수 있다. ‘기념비’가 아닌 건전한 ‘비판’이 필요한 때다. 언제까지고, 니체에게 냉소를 받을 수는 없지 않은가. 2. 쓰고도 욕 나오는, 그러면서도 내심 바라마지 않는 이상론. 한양대 임지현 교수의 글은 일견 매력적이나, 결론이 없다. 그래서 답답하다. 명확한 정치적 목적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중국에게, 진보건 보수건 한국이 내밀 수 있는 카드는 현재 전무(全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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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빌려줄까
by tracy at 18:08 ....베타테스터임? by Architect at 14:22 희한하거나 흥미롭거나 이상.. by 소드 at 07/02 200문장 영어회화 씨디를 신.. by 200문장영어 at 07/02 날카로우신걸! by 달빛이야기 at 06/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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