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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께서 어머니와 결혼하겠다는 아버지를 ‘풍각쟁이’라고 한 것은 다 이유가 있어서였다. 좋게 말하면 음유시인이요, 나쁘게 말하면 해금 들고 낑깡거리는 거지라는 뜻의 풍각쟁이. 단어에 어줍잖게 들어간 풍(風)자처럼, 젊었을 때의 아버지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거리의 사람이었단다.
조모님 말씀으론 반년에 달포나 함양의 집에 붙어있으면 다행이고, 어머니가 계셨던 판자촌인 후암동 하숙집들 사이를 제집 드나들듯 하던 이가 바로 그였다. 산천의 그림자밟기를 그렇게도 좋아했던 당신이었기에, 십이간지에도 속하지 않는 바람띠를 가지고 태어난 양 외가의 식구들은 아버지를 백안시하기 바빴다. 그래서 당신이 제대로 된 직장을 잡고 외가에 나타났을 때 기겁했던 이는 한둘이 아니었다고 한다. 바람처럼 훌쩍 나서곤 하던 그 역마살 잡아보자고, 여행을 접지 않고설랑 나랑 결혼은 꿈도 꾸지 말라고, 어머니께서 한나절을 잡고 설교에 가까운 설득을 했던 보람이 있었던 거라 했다. 그때부터 당신은 족쇄 채워진 바람이 됐다. 아니, 한 곳에 매인 그것은 더이상 바람이 아니었다. 제 몸을 못 가누고 비척대는 공기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던 게다. 결혼한 지 한 달이나 되었을까. 그놈의 역마살 잡아보겠다고 아버지 어깨가 축 늘어져 땅에 끌지는 것을 보다 못했는지, 어머니는 담판을 짓기로 했다. 이혼해서 여행이나 다닐 것인지, 나랑 같이 땅에 진득이 붙어 살 것인지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방바닥에 칼을 꽂고는 당신이 풀 죽어있는 꼴 도저히 못 보겠다고 울면서 협박했다는, 전설 같은 얘기다. 지금의 얌전한 어머님 모습을 보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이었을 테다. 타협을 했단다. 어딘가 갈 때는 꼭 어머니께 말하고 간다고. 도중에 반드시 연락을 한다는 조건도 같이 붙여서 말이다. 어쩌면 사소했을 저 약속에, 당신의 어깨에 쭉 힘이 들어간 건 그때부터였다고 한다. 바람은 바람다워야 했다. 언제나 어느 쪽으로나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이야말로, 바람을 완성된 자유로움의 상징으로 이끄는 요소였다. 젊은 아버지의 여행가방을 멘 빛바랜 사진을 보면서,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바람을 떠올린 이유는 그것 때문이었으리라. 어쨌건 당신의 줏대가 약했는지, 어머니의 눈물에 그만 넘어가 버렸는지는 모르지만 부모님은 30년이 다 되도록 오순도순 함께 살고 계시다. 하지만 가끔씩은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으려고 근질거리는지, 어머니를 지긋이 바라보며 뒷산을 손가락질하곤 하는 모습을 보며 식구들은 웃어버리곤 한다. 백두대간 산천에 찍은 발자국 수만 따지면 저 한비야씨도 능가할지 모른다는 당신, 스케일이 많이 줄은 셈이다. 내킬 때만 주변에서 맴도는 바람의 속성을 꿰뚫어 본 어머니야말로 어쩌면 진짜 '양처'이셨는지도. “아비는 바람이 되고자 했다.” 전화통에서 들려오는, 영화의 삼류 광고카피와도 같은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는 한참을 배꼽을 잡았더랬다. TV 연속극이 시작하면 궁둥이 무게가 손오공 깔아뭉갠 태산쯤으로 불어나던 저 양반을 보면서,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궁둥이가 방방 뜨던 호기어린 청년을 누가 감히 상상해내겠는가. 창문을 열자 코를 맵싸하게 만드는 꽃가루가 방 한가운데로 날아들어왔다. 신촌 복판까지 스민 건들바람이 코끝을 간지럽히는 것을 느낀다. 슬쩍 아비가 생각나는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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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빌려줄까
by tracy at 18:08 ....베타테스터임? by Architect at 14:22 희한하거나 흥미롭거나 이상.. by 소드 at 07/02 200문장 영어회화 씨디를 신.. by 200문장영어 at 07/02 날카로우신걸! by 달빛이야기 at 06/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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