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자는 무지하다.
by 달빛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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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先)의 미학
1.
숨가쁜 발소리가 전각의 복도를 내달렸다. 구르듯이 침소에 들어선 남자는 곧 밀봉된 서찰을 발견했다. 웃음이 번졌다. 남자는 붓을 들어 '열네 번째 아들'을 뜻하는 '십사자(十四子)'의 열십자에 한 획을 더했다. 십(十)자는 졸지에 임금을 뜻하는 어조사 우(于)가 되어버렸다. 이것으로 넷째가 황위를 물려받게 된 것이다.

강희제의 넷째 아들은 선수(先手)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일찍부터 부왕의 주변 환관들을 매수해 놓았기에, 아비의 부음을 누구보다 먼저 전해들을 수 있었다. 그가 침전에 반 발짝이라도 늦었다면 역사는 분명 다른 방향으로 흘렀으리라. 손무자가 강조했던 '선(先)'을 몸에 체득했던 넷째. 그가 바로 청의 옹정황제다.

반면에 여기 프러시아와 오스트리아 연합군을 보시라. 그들의 장비는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 정규군보다 훨씬 우수했다. 사기도 높은데다 기강이 꽤나 엄정한 정예병들이었다. 단지 하나의 아주 사소한 문제가 있었다면, 나폴레옹이 하루 먼저 도착해 진을 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날이 밝아서야 도착한 연합군은 얼음 공터의 반대쪽에 진을 친 프랑스군과 대치했다.

연합군은 돌진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얼음 벌판 위로 거의 올라왔을 무렵, 기다리던 나폴레옹군의 대포가 불을 뿜었다. 대지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곳은 기실 호수였고, 얼음은 포탄에 산산히 박살났다. 물에 빠진 연합군 2만여명이 학살당했다. 지리를 샅샅이 조사한 프랑스군에 비해 연합군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루 늦은 탓에 지형을 숙지할 시간을 벌지 못한 탓이었다. 단지 24시간의 차이가 전체 유럽의 판세를 결정한 셈이다.

먼저(先) 행동하는 것의 이점은 예나 지금이나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신시장을 개척해 선점한 기업은 후발주자에 비해 월등히 우월한 지위를 확보한다. 진입 장벽이다. 처음 진출한 기업의 기술 격차와 인지도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막대한 투자와 마케팅 비용이 들여야 가까스로 동등해질 수 있는 세상이다. 기업의 신속한 투자결정이 주목받는 것은 그래서다. 남이 보지 않은 곳으로, 누구보다 빠르게 진출해야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것이다.

바야흐로 남보다 먼저, 남보다 빨라야 살아남는 시대다. 일본 최고의 전략가로 꼽히는 다케다 신겐이 남보다 먼저 움직일 수 있는 기병대를 중시했던 일은 그래서 놀라움으로 다가온다. 아마 '풍림화산'의 그도 일찍부터 알았던 모양이다. 먼저 선(先)이 좋은 선(善)이라는 지금의 경구를 말이다.
by 달빛이야기 | 2006/05/07 15:03 |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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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산왕 at 2006/05/09 00:13
뜬금없지만 orz.. 가이군감에 의하면 다케다 기마부대는 이동만 기마로 하고 전투 전에 말에서 내려서 싸웠다고 하더군요 orz...
Commented by 달빛이야기 at 2006/05/09 10:11
냐하하. 신장의 야망 12, 혁신편이었던가요. 거기서는 말을 타고 돌격하는 걸로 나오던데 말이죠. 하긴 거창을 들고 돌격하는 기병의 이미지와는 조금 틀린 모양이더군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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