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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 내려갔을 때 만났던 친구 녀석은 아이들 과외에 신문을 쓴다고 했다. 두살바기 어린애를 붙잡고 신문으로 대체 어떻게 가르친다는 건지. 신문으로 애를 쌈싸먹지나 않으면 다행이라며 웃었더니, 딸 옆에서 흥미있는 기사거리를 보면 읽어주는 거라며 나름대로 정색한다. 자신도 아침에 정보를 통독하는 겸 해서 읽어주는데, 의외로 재미도 있고 딸 눈초리가 그때면 똘망똘망해진다며 자랑한다. 으이그 팔불출. 생각해보면 신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후암동의 외할머니처럼 김치통을 싸는 포장지로 써먹는 수도 있다. 좀 급할 때는 -함양의 밭에서 어릴 적에 많이 저질렀던 만행처럼- 구겨서 보들보들하게 만든 후 적당히 휴지 대용으로 쓸 수도 있다. 그뿐이랴, 풍찬노숙의 많은 이들에게는 의외로 잘 찢어지지도 않는 신문은 친근하고 따뜻한 이불이다. 신문은 참으로 모든 계층에게 '다용도'인 셈이다. 그러나 용도가 아니라 신문 본연의 목적마저 '다용도'여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대중이 알고 싶어하고 또 필요로 하는 정보들을 빠르고 정확하게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신문의 목적이다. 발행 목적이 정보 전달이 아니라, 편향된 가치관과 목표가 삽입된 신문은 정부의 통치수단으로 이용되던 광고지인 '관보'와 다름없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독일에서 최초로 창간된 일간지라는 '라이프치거 자이퉁'의 창간 목적은 분명 앞서의 포장지는 아니었을 터이다. 읽는 것이 아니라 다른 용도로 쓰이는 '굴욕'을 당하기 위해 태어난 것은 아니니만큼, 소중히 다뤄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종이의 아우성에도 분명 일리가 있다. 물론 그렇게 해 줄 용의는 있다. 신문이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해주기만 한다면 말이다. 하나의 사건을 보도하는데도 신문의 태도들은 모두 다르다. '진실은 없다. 자신에게 유리한 사실만 존재할 뿐'이라는 격언이 무색하다. 신문사가 한 쪽의 이익에 영합해 진실의 일부만을 사실로 보도한다면, 독자들은 더 이상 신문이 정보를 전해준다고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런 신문이 지하철의 짐칸에 올려지든, 폐품 수집상의 손으로 다시 옮겨지든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느끼게 된다. 그런 잉크투성이 광고지는 읽기 전에 '다용도'로 사용할 수밖에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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앓는중 직장인 몽상가 최근 등록된 덧글
고맙습니다 헤헤^_^
by 달빛이야기 at 10/06 정말로 신장 팔 것 같습니다... by 달빛이야기 at 10/06 오랜만이예요. 역시 감사 .. by 달빛이야기 at 10/06 아 저런...-_-; 축하를 .. by 달빛이야기 at 10/06 전 가우루에요! by AKI☆ at 1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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