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자는 무지하다.
by 달빛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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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3년 중국 무역이 자유화되면서 영국 동인도회사에 의한 차(茶) 수입 독점 역시 해제되었다. 다른 거래품목에 비해 차는 이윤이 매우 높은 물품이었기에, 많은 유럽의 거상들은 차를 사기 위해 범선을 몰고 일제히 중국으로 향했다. 그러나 차라는 품목이 원래 비싼데다 시일이 지날수록 값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어, 차상(茶商)들은 최단 시간에 가장 많이 운반할 수 있는 선박을 물색하는 데 사업의 성패를 걸었다.

그 결과 유럽의 조선소에서는 차를 빨리 운반하기 위한 클리퍼라 불리우는 쾌속선들이 건조되기 시작했고, 어느 쾌속선이 제일 먼저 차를 싣고 오는가를 경주하기도 했다. 이른바 티 레이스 시대의 개막이다. 햇차가 나오는 4월 말이 되면 그것을 운반하는 선박이 상하이, 푸저우에서부터 속속 런던으로 향했다. 쾌속선에 의한 티 레이스는 1850년대와 60년대에 최고조에 달했으니 참으로 장관이었으리라. 당시 배의 속력은 12-13노트였고, 범선이 아직 증기선보다 빨랐던 시기였다.

1850년 미국 국적의 오리엔트 호가 1500톤의 차를 싣고 홍콩-런던 간을 95일에 주파한 기록을 세웠고, 영국의 3대 차회사 역시 오리엔트호를 애용했다. 이에 자존심이 상한 해양제국 영국이 긍지를 걸고 만든 최신형 범선의 이름이, 바로 클리퍼 가운데 가장 유명했던 커티삭(Cutty Sark)이다. 당시 영국의 한 시인이 시드니에서 런던까지 85일만에 주파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던 이 최고속의 배를 찬양하며 '마스트는 숲과 같고 배 이름은 노래와 비슷하다'고 읊었을만큼, 차의 나라 영국은 '짧은 슈미즈'를 의미하는 커티삭 호에 거는 기대가 컸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이었는지, 커티삭 호는 단 한번도 티 레이스에 참가하지 못한 채 퇴출되는 비운의 배로 전락했다. 이는 티 레이스가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기 이전까지만 지속되었기 때문이었다. 커티삭호가 진수된 것은 1869년 11월 2일, 즉 수에즈 운하가 개통된 바로 6일 만의 일이었다. 거기다 업친 데 덮친 격으로, 증기 엔진의 급격한 발달로 인해 범선은 곧 세계의 해운사에서 사라지는 운명을 맞게 된다. 커티삭은 참으로 타이밍을 맞추지 못한 셈이다.

"낙오자들은 변화의 시기를 감지하지 못한다. 평범한 기업은 세상의 변화에 페이스를 맞춘다. 그러나 성공하는 기업은 변화 자체를 만들어내거나, 변혁의 타이밍에서 앞서간다." 도요타 기이치로의 말이다. 그렇기에 GM을 누르고 세계 제일의 자동차 회사로 뛰어오른 도요타의 경영철학 중 하나가 "시류를 앞지르라"는 간단한 구절이라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업들이 연달아 상시 비상경영 체제를 선언하는 시점에서, 한국에서 가장 큰 자동차(車)회사가 올해로 18년 연속 노사분규를 기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답답해진다.

PS>
이차냐 저차냐 그차냐
by 버섯 | 2006/03/12 00:19 |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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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Shirou君 at 2006/03/12 00:37
'그차'가 '이차' 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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